문장의 고마운 효과
Vijñāna
M.Mills
2008. 9. 20. 23:08
"... 비록 어떤 사람이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경험들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이 사실이 인격의 명백한 연속성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가 다른 육체의 동일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가 죽은 사람의 기억과 경향성을 어떻게 해서 갖게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 속에 사람이 비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 현대 다시 살고 있다는 생각)은 훨씬 더 공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후대에 사는 것으로 육체적으로 확인된 사람이 보다 이전의 사람으로 육체적으로 확인된 표면상의 기억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규칙을 단순히 세움으로써 환생의 논리적 가능성을 우리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A.J.Ayer 'Concept of a Person and Other Essays'
일전에 박해당 선생님께 강의를 들으며,
급진적인 해석에 당황스러웠으나. 근래에 초기경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건 아닌듯.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티벳으로의 여정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그네들의 불교관에도 큰 영향을 받았고, 지속적으로 윤회에 관해 설하는 경전을 보며 그 비중을 너무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랄까. 솔직히 윤회고 뭐고 다 필요없다고 학계에서 이야기했다가는 엄청난 반론에 직면할 것이 뻔하겠지만 이건 차후에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경전을 보면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물음은,
과연 선정의 단계를 넘어서 얻게 되는 일반인에게는 초경험적인 것들까지도 경험이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정말이지 나도 vipassana 프로그램에라도 참여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요즘 부쩍 수업시간에, Kalupahana 선생님의 초기 불교의 이해에 대한 코멘트를 지도 교수님이 던져 주시는 관계로 동국대 도서관 및 웹싸이트를 통해 그의 글들을 구해서 모두 읽어보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그는 우리가 초경험적이라고 여기는 것 일체를 '경험적인 것'으로 해석하면서, 초기불교의 토대를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