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ay 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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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당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갈랑가, 레몬그래스와 고수는 음쓰봉에 가지런히 담아두고 그냥 그렇게 집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꾸물꾸물했지만 우산은 챙기지 않았고, 선물로 건네주고 싶었던 '차(茶)'를 사기 위해 연희동까지 가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언젠가 너를 '레게 치킨'으로 데려간 선택을 했던 것처럼,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꽃을 한아름 사서 품에 안겨주고 싶었다. 예전에 네가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났거든... 그럼 어떤 꽃을 사야할까 망설이다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해바라기'를 추천해주었지만 나는 근래에 우리가 함께 보았던 '장미'를 건네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 코에 장미 가시를 얹고 '코뿔소 코스프레'를 해준 적이 있었더랬지. 가까스로 도착한 시장에서 꽃집을 발견했고 망설임없이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장미는 많지 않았다. "꽃이 많이 없네요" 라고 물으니 "요새 꽃 안 팔리는거 몰라, 총각"하고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셨다. "주세요, 이 가게에 있는 장미 모두" 나는 왜 망설였을까. 사실 준비할 시간은 많았다. 하지만 '너'는 아마도 '나'를 만나는 것이 불편했을테고, 심지어 나의 전화와 메세지조차 부담스러워했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나로 인해 불편해한다면, 내 욕심은 접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으니까. 고심 끝에 준비한 꽃을 들고 경비실로 향했다. 드링크 음료를 내밀며 말했다. "어르신, 괜찮으시면 인터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몇 동 몇 호요?" 쪽지를 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지금 말고, 오분 후에 부탁드립니다" 나 홀로 설레이며 기다렸던 너의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고, 그 날 두고 온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너는 아무 말이 없었고, 그랬기에 나도 묻지 않았으니까. 집에 돌아와 "세부"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출국일까지는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고, 나는 너를 만난 이래 가장 먼 곳에서 너를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돌하게 너의 손을 잡고 내 마음을 전했던 날부터 '너'라는 존재는 내게서 단 한 뼘만큼도 멀어진 적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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