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벽이 넘겨야 할 또 한 장의 페이지라면
나는 이 새벽이 가기 전에
부질없이 그걸 넘깁니다
넘겨진 뒷장에는 오늘도 어제처럼
불러도 소용없어 부르지 않은 이름이 써 있습니다
그 이름이 뒤로 가고 아무 글자도 없는
새로 넘겨진 하얀 페이지가
내일 나의 새벽이라면 나는 거기에
하루 종일 불러보지 않아 어색하게 굳어 있다가
각혈한 피처럼 툭 입속에서 떨어질
불러도 소용없는 그 이름을 또 써넣겠지요
그렇게 날들은 가고
뜻 없이 반복되는 이름으로 가득한
하얀 새벽의 페이지들은 낙엽처럼 쌓이고 쌓여
어느덧 두터운 책이 되어갑니다
늦은 가을날 나는 이 책을 숲으로 들고 들어가
안개 속에 던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후로도 나의 새벽이 넘겨야 할 수많은 페이지라면
책은 끝없이 이어지고 계절의 숲 깊은 곳 여기저기서
불러도 소용없어 부르지 않은 당신의 이름이
짙은 연기로 까마득히 메아리치겠지요
성기완 , 당신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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