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전 커피를 좋아해요. 갓 볶은 빈을 받아먹는 곳이 있죠. 물론 에스프레소만 마셔요. 허브티도 좋아하지만요. 와인도 좋아합니다. 나중에 공부를 해서 바리스타와 소믈리에가 되는 게 꿈이에요. 참, 클래식도 좋아한답니다. 게르기예프의 반지 초연을 보러 갔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연의 티켓은 100만 원이 넘었다.) 와인과 커피를 팔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북카페를 차리는 게 장차 꿈이랍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젠장.
더 젠장스러운 일은 내가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간 그 남자는 부엌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부엌칼이라도 물고 죽었나, 하고 부엌문을 열어 보니 그는 딸기의 꼭지를 따서 반 갈라 썰고 바나나의 껍질을 벗겨 송송 썰어놓고 키위를 깎고 오렌지 껍질을 벗겨 8등분해서 접시에 담아 포크를 꽂고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하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아, 잠깐 너를 위해 과일을 깎고 있는 나의 손에 푹 빠지는 바람에….
나는 생각했다.
이런 젠장.
토이남, 그들의 모든 것
1. 토이남이란 : ‘토이’의 노래를 좋아하며 토이 노래에 나오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독신 남자를 일컬어 토이남이라 한다.
2.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을 때의 토이남을 말하는 노래 : <여전히 아름다운지>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3. 연애를 하고 있는 토이남을 말하는 노래 : <그럴 때마다>
4. 짝사랑을 하고 있는 토이남을 말하는 노래 : <좋은 사람(새드 버전)>
5. 토이남의 가장 흥겨운 순간을 말하는 노래 : <제리 제리 고고>
6. 토이남이 좋아하는 탈것 : 좋은 스테레오가 장착된 자동차를 기본으로 하며 그들은 만일 여력이 된다면 귀엽고 작은 스쿠터를 가지고 싶어한다. 일본산의 아기자기한 스쿠터보다는 베스파나 하바나 같은 이탈리안 클래식을 선호하며 간혹 자전거를 좋아하는 토이남도 존재하나 이 경우에도 그들은 결코 MTB 스타일을 선택하지 않는다. 빈폴 광고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듯한 클래식 스타일만이 그들의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7. 토이남이 좋아하는 동물 : 물론 고양이. 그렇지만 페르시안이나 샴 고양이를 밝히는 것은 경박해 보이므로 코리안 숏헤어를 좋아한다. 아주 큰 개라면 토이남의 취향이지만 말티즈나 요크셔 같은 왕왕 짖는 작은 애완견을 토이남이 좋아하기란 아주 어렵다.
8. 토이남이 좋아하는 마실 것 : 커피(에스프레소로 시작해 반쯤 마시고 나면 뜨거운 물을 타서 아메리카노로 만든다. 경박한 크림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와인, 맥주(국산은 제외, 호가든이나 벡스 다크를 좋아한다.)
9. 토이남이 가고 싶어 하는 곳 : 체크무늬 러그를 필히 지참하고, 등나무 바구니에 넣은 샌드위치와 과일,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어딘가의 교외. 영화 <괴물>에 나올 것 같은, 맥주와 오징어를 파는 고수부지를 토이남은 싫어한다. 엘비라 마디간 필까지는 못 내더라도 하다못해 양평 정도까지는 가주는 것이 토이남의 정열이다.
10. 토이남의 장래희망 : 은발 신사. 따라서 새치를 발견하면 몹시 즐거워한다. 롤모델은 제레미 아이언스, 혹은 리처드 기어(단, <뉴욕의 가을> 버전이다. 절대로 <사관과 신사> 버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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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토이남의 체격 : 토이남은 너무나 예민해서 살찌지 않는다. (ex : 유희열을 보라! 그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남자가 살이 찔 수가!)
13. 토이남의 완소 여성 스타일 : 어디까지나 약간 어리버리할 것, 한마디로 애기 같은 여자. 전형적인 여자 스타일로 뭘 해도 다소 어설프고 귀여운 어리버리녀들이 토이남의 지대 완소 스타일. 토이남은 민감해서 위험을 쉽게 알아채므로 팜므 파탈을 보면 울면서 도망친다. 물론 눈에 티가 들어갔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달리겠지만….
14. 토이남의 완소 휴일 : 햇살이 따뜻한 날 자전거 뒤에 그녀를 태우고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 빵집에 들어가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서 소풍을 간다. 여기에도 와인 한 잔을 빠뜨릴 수 없지만 토이남이 보는 것은 그의 여친이 아니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한 방울도 와인을 떨어뜨리지 않고 따르는 자신의 긴 손가락! 여자친구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따르고 있는 와인을 받아 마실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갤러리가 있는 휴일!
15. 토이남의 친구관계 : 토이남의 친구들은 누군가 실연을 당하면 밤새 술을 마시며 위로해준다. 단, 맥주만 마신다는 거…. 밤을 새며 술을 마셨다 해도 병 주둥이에 입을 댔다 떼기만 할 뿐, 계산할 때 보면 인당 1병을 넘지 않는 청순하고 시시한 주량이 이들의 특징이다.
16. 토이남의 약점 : 의외로 촌스러운 취향. 이를테면 케익에는 딸기가 올려져 있어야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한다던가, 레몬이 들어가지 않는 홍차를 보면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진다.
17. 토이남의 가장 큰 콤플렉스 : 아직 소년인 것
18. 토이남의 가장 큰 자랑거리 : 아직 소년인 것
19. 토이남과 여자 : 그들은 대부분 여자친구에게 잘해준다. 특히 원시 시절의 채집 본능을 발휘해 여자친구를 위한 선물을 사려고 몇 시간 동안 헤맨다던가 하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여자친구가 정녕 좋아할 것만 같은 물건이 아니라 쇼윈도에 비친 바로 자기 자신, 여자 친구의 선물을 사기 위해 오랜 시간 다리가 부르트도록 헤매는 바로 나, 나, 나, 나, 나!
20. 여자가 보는 토이남의 가장 큰 장점 : 간지럽다는 것
21. 여자가 보는 토이남의 가장 큰 단점 : 간지럽다는 것
토이남의 모든 특징은, 자기 자신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 와인을 따르고 과일을 깎는 아름다운 자기 손은 자기 혼자서만 보세요. 나는 우악스럽게 생 오렌지 껍질을 벗겨 과즙을 쭉쭉 빨아먹었고, 접시에 놓인 과일은 그렇게 말라들어갔다. 당신은 당신을 좋아할지 몰라도 나는 당신이 밥맛이다. 그래, 니가 너를 좋아하는 건 충분히 알겠어. 이제 남도 좀 좋아해보지 그러니? 그렇다, 이게 내가 ‘SK t’ 광고에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이제 남도 좀 보지 그래?
원문보기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12002003&article_id=45241
megazinet 는 상당히 즐겨찾던 싸이트인데,
블로그질에 몰입한 이후로는 조금 뜸했던 것이 사실.
암튼, 날마다 왕래하는 하하녀석의 블로그에 갔다가
무심코 읽어보게 된 '토이남' 에서 잠시 움찔할 수 밖에야.
발끈하면서 무언가를 써내려가기엔 조금 서글픈 느낌이 들어서. 몇 자 적자면.
그들은 왜 토이남이 되었는가? 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시 된장녀를 떠올려보자. 정확히 된장녀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으니, 내가 아는 한에서 잠시 적어보자면, 그녀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와 동시에 인정받고 싶어서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싶어하며, 분수에 맞는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삶의 패턴들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자라고, 나는 알고 있다. 결국 그녀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읽는 나도, 그리고 당신도 또한 당신들의 친구들도 알고 있는 패리스 힐튼의 따라쟁이들은 아닌 것인가? (고등학교 삼학년 학생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처럼) 그녀들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로만 사람을 평가하려고 하는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야만 했던 새로운 인종은 아니었던가...
다시 토이남으로 돌아가보자. 토이남이란 ‘토이’의 노래를 좋아하며 토이 노래에 나오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독신 남자를 일컫는다고 한다. 결코 '토이'의 노래를 좋아해서, 그 노래에 나오는 가사처럼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나는 이제 '토이'의 새로운 앨범이 나와도 전혀 신경쓰지 않거니와, 때문에 새로운 노래들의 가사가 어떠한지는 더더욱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예전부터 '토이'의 가사들을 낯간지럽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몇곡 되지는 않지만, 그의 연주곡들에 매료되곤 했었다. 게다가 고양이는 전혀 키우고 싶은 맘이 없을 뿐 아니라, 차 따위에 돈을 들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으며 시시한 주량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군가에 의하면 64정도의 토이남 지수를 분유하고 있는 나는.
왜 토이남이 되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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