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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6 물과 작은 조각
  2. 2008.07.03 Roland Barthes

물과 작은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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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쟁반은 대단히 정교한 질서를 갖춘 한 폭의 그림 같다. 까만 바탕에 다양한 물건들-밥그릇과 네모난 상자, 접시, 젓가락, 소량의 음식, 잿빛 생강 조금, 주황색 야채 몇 가닥, 갈색 간장-이 놓인 하나의 액자이며, 용기들이나 몇 가지 안 되는 음식들의 양은 적지만 수는 아직 많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에 따라 더 작아지거나 커지는 표면과 몸체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프란체스카의 그림의 정의를 만족시킨다고 하겠다. 


 그러나 맛있어 보이는 이러한 질서는 식사의 리듬에 따라 해체되면서 다시 창조될 운명에 놓여 있다.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처럼 보이던 것이 작업대나 체스 판처럼 변하고 보는 공간에서 실습과 놀이의 공간으로 바뀐다. 원래의 그림은 팔레트에 불과해지고 당신은 식사 중에 이 팔레트를 즐기면서 여기에선 야채 한 조각, 저기에선 밥 한 숟가락, 또 저쪽에선 반찬 한 입, 다시 여기에서 국 한 모금을 자유롭게 먹는데, 시각예술가가 그림물감들 앞에서 알고 있는 동시에 망설이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먹는 행위는 부인되거나 축소되지 않으며, 주재료-부엌이나 요리에 적당한 대상, 그러나 일본요리는 거의 요리된다고도 할 수 없고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식탁으로 옮겨진다. 이 음식에는 칼질 말고 특별히 첨가되는 것이 없다-의 변형보다는 선택되는 순서가 규칙에 얽매여 있지 않고-국을 한 모금 마시고 밥도 한 숟가락 먹고 채소를 집어먹는 과정을 번갈아할 수 있다-재료들을 변화시키고 영감에 따라 조합시키는 것과 더 관련이 있는 일이나 놀이로 간주된다. 영양섭취라는 이 모든 행위는 창작행위 안에 존재하며 당신은 선택행위를 통해 먹을거리를 창작하게 된다. 요리는 준비과정이 시간적으로 절도 있게 떨어져 있는 구체적인 생산물이 더 이상 아니다. 이 음식의 살아있는 특질은 각 계정마다 다음 시인의 소원을 만족시킬 것 같다. "오, 더 없이 아름다운 요리로 봄을 찬미하고 싶구나 ......"


 일본 음식은 그림의 가장 시각적이지 않은 특질이자 몸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특질, 즉 색이 아닌 촉감을 취한다. 밥-'쌀'과 다른 이름을 갖는 것만 보아도 절대적으로 특별한 정체성을 알 수 있다-은 물질의 모순성으로만 정의된다. 밥알은 서로 잘 붙으면서 또 잘 떨어진다. 밥은 작은 조각이자 덩어리며 이리저리 흩어진다. 밥은 일본요리에서 유일하게 무게가 있다. 밥은 가라앉고 뜨는 것과 반대다. 밥은 촘촘한 백색으로 존재하고 낱알-서구의 빵과는 반대다-이면서 볶을 수도 있다. 밥은 조밀하게 한데 붙은 채로 상에 오르지만 젓가락이 닿는 순간 흩어지지도 않으면서 헤체되어, 이런 분리작용에 의해 환원될 수 없는 또 다른 응집력이 생긴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러한 계산된 해체행위로 음식을 초월하는 소비가 이루어진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일본의 국은 영양섭취라는 상호작용에 약간의 투명성을 더해준다. 프랑스에서 맑은 수프라 하면 형편없는 음식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물처럼 가벼운 일본식 맑은 장국에는 미소된장의 흔적이나 송송 썬 파 한 움큼이 떠다니고 건더기 두세 개가 가끔 보이기도 한다. 물 위를 떠다니면서 수면을 가르는 자그마한 것을 보면 그 농도가 투명하고 기름기 없는 영양체이며 순수하기 때문에 더욱더 효력이 있는 영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물과 공존하는 것이며 미세한 해산물과 같은 것들은 샘물, 즉 심오한 생명력을 시사한다. 

 
 따라서 일본요리는 물질의 축소된 체계 안에, 흔들거리는 기표 안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불확실한 언어에 기초하는 글쓰기의 기본 특질이며 이런 맥락에서 일본요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슬로 씌어진 음식, 음식이 담긴 접시가 아니라 인간과 밥상, 우주의 위계질서를 정하는 심오한 공간 안에 음식물을 새기는 분리와 선택의 몸짓에 받쳐지는 헌납품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란 평면적인 표현의 공간에서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을 똑같은 힘으로 결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제국, 롤랑바르트/김주환,한은경,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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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and Bar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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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글을 처음으로 접했던 건, 제대를 하고 막 복학했을 무렵이었다.

아마도 사진예술의 이해라는 수업을 청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참여하던 중,

도서관 서가에서 그가 쓴 '사진론' (실은 수잔 손택과 함께 쓴 책으로 기억한다)을 대출.


그러다가 어느 순간. 녀석의 위트있는 글쓰기에 정신을 잃고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 학술부 소식지를 내야 하던 나로써는 그의 글들에서 차용할 어구들을 찾기 바빴었고,

지금 꾸려나가는 이 블로그의 카테고리의 제목들도 거진 그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그리고 또?

 이제는 무엇을 쓸까? 아직도 당신은 글쓸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자신의 욕망으로써 글을 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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