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는 우리가 나무를 인식할 때, 두 종류의 나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 즉 내가 한번 눈으로 본 후 내 안에 시각적인 관념(idea)으로 남아 있는 나무가 하나 있고, 그 배후에 나와 독립해서 나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따로 저 '바깥에' 존재하는 나무가 또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자주 인용되는 "모든 감각적인 사물은 관념이다. 이 관념은 '오직 정신 안에'(only in the mind)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존재는 지각되는 데 있다"(esse est percipi)라는 구절은 현실을 증발시켜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이 구체적으로 지각되며, 그 배후에 숨겨 있는 본체의 그림자가 아님을 보여주고 한 것이었다.
C. A. and Peursen, 손봉호 강경안 역, 몸 영혼 정신 : 철학적 인간학 입문
한때 우리과에서 유행하던, 한 마디.
"관념하고있네."
이상하게, 요즘 버클리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생기고 있는데,
손아섭아. 아서라. 우선 관심은 조금 미루고, 하던 작업이나 계속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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